[디스크립션]
2022년 개봉한 **‘멘(Men)’**은 *엑스 마키나(Ex Machina)*와 *서던 리치: 소멸의 땅(Annihilation)*을 연출한
영국 감독 **알렉스 가랜드(Alex Garland)**의 세 번째 장편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초자연적 공포보다 더 무서운 **‘관계의 상처’와 ‘죄책감의 구조’**를 다룹니다.
남성 중심의 폭력적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이 겪는 트라우마를,
상징적 이미지와 순환적 내러티브로 표현한 심리적 공포극입니다.
‘멘’은 인간의 본질적인 불안,
그리고 “용서할 수 없는 것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공포’를 외부의 괴물로 보지 않고,
**“우리 안에 내재된 원초적 남성성의 잔혹함”**으로 정의합니다.
출연진과 제작진: 심리와 상징으로 공포를 연기하다
‘멘’의 중심 인물 하퍼(Harper Marlowe) 역은 **제시 버클리(Jessie Buckley)**가 맡았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 이후 깊은 죄책감과 상실에 시달리는 여성으로 등장하며,
내면의 불안과 외부 세계의 위협이 교차하는 심리를 정교하게 표현합니다.
제시 버클리는 섬세한 감정 연기로
“공포 속에서도 자각을 찾아가는 여성의 여정”을 완벽히 보여줍니다.
모든 남성 역할을 연기한 **로리 키니어(Rory Kinnear)**는 이 영화의 핵심적 존재입니다.
그는 마을의 주인, 경찰, 목사, 소년, 정원사 등
하퍼가 만나는 거의 모든 남성을 동시에 연기합니다.
이는 **‘모든 남성은 같은 구조를 반복한다’**는 상징을 극대화합니다.
키니어의 다층적인 연기는,
한 인물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한 남성성의 얼굴 —
온화함, 위선, 위협, 욕망, 폭력 — 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감독 **알렉스 가랜드(Alex Garland)**는 이번 작품에서
특유의 논리적 SF 구조를 버리고, 상징적 심리 공포로 전환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영화는 ‘남성’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쉽게 폭력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촬영감독 **롭 하디(Rob Hardy)**는
푸른 숲과 붉은 빛을 대비시켜 자연 속 불안의 감각을 표현했습니다.
또한 잔향이 긴 터널의 소리와 메아리는
하퍼의 내면적 외침과 세상의 반응을 시각화한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줄거리 요약: 상실, 죄책감, 그리고 기괴한 순환
남편 **제임스(James)**의 자살 이후, 하퍼는 혼자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영국 시골 마을의 오래된 저택을 빌립니다.
그녀는 새로운 시작을 원했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 불안하고 불쾌합니다.
처음 그녀를 맞이한 집주인 **제프리(Geoffrey)**는 친절하지만 지나치게 간섭적이며,
그의 말과 행동에는 미묘한 위협이 섞여 있습니다.
이후 하퍼는 숲속을 걷다 기괴한 나체의 남자를 발견하고,
그가 집 주변을 서성이는 것을 목격하며 불안을 느낍니다.
경찰은 남자를 체포하지만 “정신 이상자일 뿐”이라며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습니다.
그 후에도 하퍼는 동일한 얼굴을 한 남자들을 계속 마주칩니다.
정원사, 소년, 신부, 경찰 — 모두 로리 키니어의 얼굴을 한 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하퍼를 괴롭히고, 죄책감을 자극합니다.
신부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그를 죽게 내버려둔 거예요. 그게 죄 아닙니까?”
점점 현실과 환각의 경계가 무너지고,
하퍼는 자신이 숲 속의 미로에 갇혀 있음을 깨닫습니다.
밤이 되자 괴이한 장면이 이어집니다.
맨몸의 남자가 자신을 분열시키며 연속적으로 출산하는 장면 —
남자들이 서로를 낳고, 또 낳으며,
결국 마지막에는 죽은 남편 제임스의 형태가 되어 하퍼 앞에 앉습니다.
하퍼는 그의 무릎 위에 앉아, 담담히 묻습니다.
“결국 당신이 원하는 게 뭐야?”
그는 대답합니다.
“당신의 사랑이야.”
그녀는 미소를 짓습니다.
그리고 칼을 들고 마당으로 나갑니다.
이후의 장면은 침묵 —
그녀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인간 내면의 죄와 재탄생: ‘멘’의 철학적 구조
‘멘’은 표면적으로는 초자연적 공포 영화지만,
실제로는 트라우마의 시각화, 죄책감의 순환 구조를 다룬 심리극입니다.
하퍼는 남편의 죽음 이후 자신이 ‘그를 밀어내서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무의식적인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그녀가 마을에서 만나는 남자들은 모두
그 죄책감이 만들어낸 자기 내면의 투사입니다.
모든 남성이 같은 얼굴을 한 이유는,
그들이 ‘하퍼가 경험한 남성성의 다양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 통제하려는 남편, 판단하는 신부, 무력한 경찰, 위선적인 신사 —
이들은 결국 하나의 구조, 하나의 ‘남성적 폭력성’으로 수렴됩니다.
후반부의 출산 장면은
남성 폭력의 세습,
즉 “남성이 남성을 낳는 구조”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강렬한 상징입니다.
이는 사회적 폭력의 유전,
그리고 여성에게 되풀이되는 상처의 순환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피해의 서사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퍼는 마지막에 괴물과 남편의 형상을 마주하면서
그를 **공포의 대상이 아닌 ‘인식의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그녀의 미소는 복수나 승리가 아니라, ‘자각’의 표정입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죄를 외부에 투사하지 않고,
그 모든 감정을 통합하며 재탄생합니다.
감독 알렉스 가랜드는 이 장면을 통해
“공포의 끝에는 이해가 있다”고 말합니다.
즉, 공포란 외부의 괴물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온 내면의 슬픔과 책임의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결론]
‘멘’은 잔혹한 장면보다 상징과 심리의 공포로 압도하는 작품입니다.
감독은 공포를 ‘감정의 구조’로 재정의하며,
죄책감과 폭력, 용서와 자각이 교차하는 인간 내면의 풍경을 펼쳐냅니다.
제시 버클리의 연기는 공포 속에서 피어나는 자각의 힘을,
로리 키니어는 남성성의 순환적 폭력을 압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결국 ‘멘’은 공포 영화의 틀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관계 — 가해자와 피해자, 죄와 용서, 탄생과 죽음 — 를 탐구한 철학적 비극입니다.
마지막 장면의 하퍼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닙니다.
그녀는 고통을 이해했고,
그 이해가 바로 해방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