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립션]
2019년 공개된 **‘비바리움(Vivarium)’**은 아일랜드 감독 **로칸 피네건(Lorcan Finnegan)**이 연출한 SF 스릴러로, ‘완벽한 삶’이라는 사회적 환상을 냉혹하게 해부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신혼부부가 완벽한 주택 단지에 갇히는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곧 “소비 사회의 덫”, “인공적 삶의 실험”, **“가족 제도의 구조적 모순”**을 상징하는 거대한 은유로 확장됩니다.
‘비바리움’은 라틴어로 ‘인공 생태 실험장’을 뜻하며, 영화는 이 단어의 의미를 인간 사회 전체로 확장해 질문합니다 —
“우리는 스스로 만든 실험 안에 살고 있지 않은가?”
출연진과 제작진: 인공적 세계 속 진짜 인간을 연기하다
‘비바리움’의 주연은 **이모겐 푸츠(Imogen Poots)**와 **제시 아이젠버그(Jesse Eisenberg)**입니다.
이들은 각각 젬마(Gemma)와 톰(Tom)이라는 이름의 젊은 커플로 등장합니다.
젬마는 교사, 톰은 육체노동자로, 평범하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이상적인 커플로 그려집니다.
이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부동산 중개인을 만나는데, 그 중개인 **마틴(Martin)**의 기묘한 태도와 이상한 분양 단지 ‘욘더(Yonder)’의 분위기는 초반부터 불안을 조성합니다.
마틴 역의 **조나단 아리스(Jonathan Aris)**는 인간이 아닌 듯한 기계적인 미소와 음성을 통해 비현실적 사회의 인물상을 완벽히 구현했습니다.
감독 **로칸 피네건(Lorcan Finnegan)**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단지 공포물이 아니라, 현대인의 주거·가족·사회적 구조에 대한 풍자”라고 밝혔습니다.
제작진은 실제 세트를 완전히 통제된 인공 구조물로 만들었고, CG 대신 현실적 단조로움을 강조해 ‘가짜 현실의 불편한 진실’을 극대화했습니다.
촬영감독 **마크 킬리안(MacGregor)**은 파스텔톤의 색감을 사용해 ‘이상적 광고 이미지’를 현실보다 더 기괴하게 표현했습니다.
줄거리 요약: 완벽한 집, 완벽한 감옥
영화는 젬마와 톰이 새 집을 찾기 위해 부동산 중개소를 방문하며 시작됩니다.
그들을 맞이한 중개인 마틴은 “욘더(Yonder)는 당신이 평생 살 수 있는 완벽한 집이죠”라며 9번 주택으로 안내합니다.
하지만 집 구경을 마친 뒤, 마틴은 갑자기 사라지고, 그들은 끝없이 반복되는 주택가 미로 속에 갇히게 됩니다.
모든 집은 똑같이 생겼고, 하늘과 날씨는 늘 일정하며, 자동차로 아무리 달려도 다시 9번 집으로 돌아옵니다.
며칠 뒤, 택배 상자 안에는 아기 한 명과 메모가 들어 있습니다.
“이 아이를 키우면 자유로워질 것이다.”
처음엔 장난이라 생각하지만, 아이는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인간을 흉내 내는 존재로 드러납니다.
그의 목소리는 기계적이고, 감정은 없으며, 인간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합니다.
톰은 집 뒤의 정원을 파며 탈출구를 찾으려 하지만, 그곳에서 자신의 무덤 같은 공간만 발견합니다.
젬마는 아이에게 애정을 주려 하지만, 아이는 냉혹한 실험의 관리자처럼 그들을 관찰합니다.
결국 톰은 육체적·정신적으로 붕괴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젬마는 진실을 추적하다가, 아이가 또 다른 세대의 인간 부부에게 자신과 똑같은 상황을 반복시키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녀는 “이건 집이 아니라 실험장이야…”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라난 ‘아이’는 젬마의 시신을 봉투에 넣고 다시 부동산 사무실로 돌아가, 또 다른 커플을 맞이합니다.
이 엔딩은 순환적 구조를 통해 **“인류 전체가 소비 시스템 안의 실험체”**라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압축합니다.
사회적 상징과 해석: ‘욘더’는 현대 사회의 축소판
‘비바리움’은 단순한 공포 스릴러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의 은유입니다.
욘더의 모든 집이 똑같은 구조인 이유는, 현대 사회의 표준화된 행복 모델 —
“집을 사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안정된 삶을 사는 것” — 이 사실상 감옥에 불과함을 풍자합니다.
아기 캐릭터는 인간의 ‘복제된 삶’을 상징합니다.
그는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의 형태를 띠지만, 감정과 자아가 결여된 존재입니다.
이는 사회가 만들어낸 인공적 인간상 — 성공, 효율, 순응을 위한 인격의 복제를 비판합니다.
톰이 땅을 파며 탈출구를 찾는 장면은 인간이 의미 없는 시스템 안에서 ‘자기 구덩이’를 파는 삶을 상징합니다.
젬마는 끝까지 아이에게 인간적 사랑을 주려 하지만, 그마저도 ‘시스템의 일부’로 흡수됩니다.
그녀의 죽음은 결국 “사랑조차 실험의 변수일 뿐”임을 보여줍니다.
색채 역시 상징적입니다.
파스텔 그린과 베이지의 조합은 광고나 카탈로그에서나 볼 법한 ‘이상적 삶’을 표현하지만, 그 완벽함은 곧 소름 끼치는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집니다.
영화의 제목 Vivarium은 본래 동물을 관찰하기 위해 만든 인공 환경을 의미하는데,
감독은 인간 사회가 이미 스스로를 비바리움 속에 가둔 존재임을 고발합니다.
즉, 이 영화의 진짜 공포는 괴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이미 실험체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론]
‘비바리움’은 겉으로는 미스터리 스릴러지만, 그 속에는 현대 사회에 대한 사회학적 경고가 숨어 있습니다.
감독은 부동산, 결혼, 가족이라는 안정의 상징을 뒤집어,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통제된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철저히 설계된 시스템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유를 잃고 순응하며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사회 실험이자 철학적 공포입니다.
결국 ‘비바리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
“당신이 사는 세상은 진짜인가, 누군가 설계한 공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