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립션]
2017년 개봉한 **‘킬링 디어(The Killing of a Sacred Deer)’**는
그리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Yorgos Lanthimos)**가 연출한 심리 스릴러이자 철학적 공포극입니다.
그의 전작 *‘더 랍스터(The Lobster)’*가 사랑의 시스템을 비틀었다면,
이번 작품은 도덕, 죄, 희생의 구조를 신화적 방식으로 해부합니다.
영화는 한 가족이 느닷없이 찾아온 초자연적 저주를 통해 **‘신의 정의와 인간의 윤리’**를 묻습니다.
감정이 배제된 인물들, 절제된 대사, 그리고 비현실적인 대칭 구도는
란티모스 특유의 냉정한 세계관을 극대화합니다.
결국 이 영화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신의 법칙’을 마주했을 때,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대한 잔혹한 실험입니다.
출연진과 제작진: 냉정함 속에서 죄를 연기하다
주인공 스티븐 머피(Steven Murphy) 역은 배우 **콜린 파렐(Colin Farrell)**이 맡았습니다.
그는 완벽한 외과의사이자, 도덕적 책임감과 냉철한 논리를 동시에 지닌 인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의 합리성은 무너지고, 인간의 본능적 두려움만 남습니다.
콜린 파렐은 억눌린 감정과 무력감을 담담하게 표현하며, “감정이 없는 공포”를 구현했습니다.
그의 아내 안나(Anna Murphy) 역은 **니콜 키드먼(Nicole Kidman)**이 맡았습니다.
냉정하고 세련된 외모 아래, 가족을 지키려는 모성적 본능이 숨어 있는 인물로,
그녀는 사랑과 생존의 경계에서 **‘윤리의 모순’**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기이한 존재,
소년 마틴(Martin) 역은 **배리 코건(Barry Keoghan)**이 맡았습니다.
그는 스티븐의 과거 환자의 아들이며, 평범해 보이지만 비정상적인 언행으로 불안을 조성합니다.
배리 코건은 거의 표정 없는 얼굴로 악의의 신화적 형상을 연기했습니다.
그의 존재는 단순한 복수자가 아니라, **‘죄의 대가를 요구하는 신적 존재’**로 기능합니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특유의 무표정한 인물 연출과 기계적 대사 톤을 유지하면서,
모든 장면을 의도적으로 감정이 제거된 상태로 보여줍니다.
이는 영화가 인간의 감정보다 도덕적 법칙의 냉혹함을 중심에 두기 때문입니다.
줄거리 요약: 인간의 죄와 신의 대가
외과의사 스티븐은 완벽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아내 안나, 그리고 두 자녀 킴과 밥과 함께
도시 근교의 넓은 집에서 부족함 없는 삶을 누립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스티븐은 이상한 소년 마틴과 자주 만납니다.
그는 스티븐이 과거 수술 중 사망하게 한 한 환자의 아들입니다.
마틴은 스티븐에게 호감을 보이지만, 점점 기이한 요구를 하기 시작합니다.
스티븐의 가족이 점점 이상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들 밥이 갑자기 하반신 마비에 걸리고, 딸 킴도 같은 증상을 겪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원인이 전혀 밝혀지지 않습니다.
그때 마틴은 스티븐에게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를 죽였어요. 이제 당신은 내 가족 중 하나를 죽여야 해요.
아니면 당신의 가족 모두가 죽을 거예요.”
그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가족들은 점점 더 심한 증상을 겪으며, 죽음에 가까워집니다.
스티븐은 합리적 사고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의학, 법, 과학 모두 이 초자연적 복수의 논리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결국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누구를 죽일 것인가.
그는 윤리적 판단과 아버지로서의 본능 사이에서 극한의 고통을 겪습니다.
결말에서 스티븐은 가족을 눈가리개한 채 랜덤으로 총을 쏘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그는 윤리적 판단 대신 **‘운명’**에 결정을 맡긴 것입니다.
총알은 결국 아들 밥에게 명중하고, 가족의 저주는 풀립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스티븐 가족은 마틴이 있는 식당에 다시 나타나지만,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습니다.
그들은 살아남았지만, 인간성은 이미 죽었습니다.
신화적 상징과 윤리의 철학: 인간이 신의 법칙을 넘을 수 있을까
‘킬링 디어’는 표면적으로는 복수극처럼 보이지만,
그 근본에는 그리스 신화의 구조가 있습니다.
영화의 원제 *“Sacred Deer(신성한 사슴)”*는
**그리스 비극 ‘이피게네이아의 희생(Iphigenia)’**에서 모티프를 가져왔습니다.
고대 신화에서 아가멤논은 여신 아르테미스의 사슴을 죽여 신의 분노를 삽니다.
그 대가로 그는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했습니다.
영화 속 스티븐 역시 의도치 않게 한 생명을 죽였고,
그 대가로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 중 하나를 희생시켜야 합니다.
감독은 이를 통해 **“현대 사회의 이성은 고대의 신화적 윤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즉, 인간이 아무리 과학과 도덕으로 무장해도,
죄의 구조적 대가(카르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틴은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운명(네메시스, Nemesis)’의 구현체입니다.
그는 벌을 주는 존재이며, 인간의 선택을 시험하는 신의 대리자입니다.
그가 감정 없이 말하는 이유는, 복수의 감정이 아닌 **‘질서의 회복’**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티븐이 가족을 무작위로 선택한 결말은,
이성이 무너진 시대의 도덕적 붕괴를 상징합니다.
그는 신의 법칙을 거부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한 채
결국 ‘확률’이라는 비윤리적 선택으로 죄를 속죄합니다.
영화는 “인간이 신의 질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문명을 세웠다”는
란티모스의 냉소적 세계관을 압축합니다.
그 세계에서는 감정도 정의도 모두 무의미합니다 —
남는 것은 대가와 균형, 즉 잔혹한 수학적 정의뿐입니다.
[결론]
‘킬링 디어’는 인간의 윤리와 신의 법칙이 충돌할 때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냉혹한 선택의 비극을 보여줍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감정을 배제한 시선으로
도덕과 본능, 책임과 무력함 사이에 선 인간을 해부합니다.
콜린 파렐과 니콜 키드먼, 그리고 배리 코건의 연기는
이 비인간적 세계 속에서도 불편할 정도로 현실적인 감정의 조각들을 보여줍니다.
결국 영화는 묻습니다 —
“우리는 신의 시험 앞에서 이성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가?”
‘킬링 디어’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신화, 윤리, 인간 본성의 심연을 탐구한 현대 비극입니다.